이곳은 폄우사입니다. 폄우사는 효명세자가 사색하고 독서하던 곳으로 유명합니다.<br/> 효명세자는 숙종대왕이 탄생한 이후로 150년여 만에 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적통 왕자였으니 아버지 순조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겁니다. 더구나 자라면서 점차 왕자다운 용모에 학습 능력이 뛰어나 빼어난 군주의 모습을 보였지요.<br/> 어찌나 믿음직스러웠던지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국사를 맡기기로 합니다. 19세 나이로 대리청정을 시작한 거지요. 임금으로서의 자질이 남다른 세자에게 일찌감치 정치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지요. <br/>국정을 맡은 효명세자는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펼쳐 당시 문제가 되었던 세도정치를 무력화시키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.<br/>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리청정 3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. 귀한 아들을 잃은 순조임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. 세상이 무너지는 듯 했겠지요.<br/><br/> 효명세자는 시를 짓는 재능도 탁월하여 여러 편의 시를 남겼는데 특히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신 아버지 순조를 향한 효심과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시가 많습니다. <춘당대>라는 시에는 순조의 덕을 기리는 내용이 들어 있지요.<br/>봄 못이 밝으니<br/>꽃 그림자 곱기도 해라<br/>온 산천 붉어<br/>비와 이슬을 머금으니<br/>우리 임금 깊은 덕이<br/>온 세상에 미쳐 이같이 고르구나.<br/><br/> 효명세자는 어머니 순원왕후의 마흔 번째 탄신일을 경축하기 위해 춘앵무라는 궁중무용을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. 춘앵무는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고 화문석 위에서 추는 독무입니다. 이 춤은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소중한 궁중문화예술로 전승되고 있지요.<br/> 훗날 세자가 돌연 사망하자 세자에게 효명이란 시호를 내린 것도 이렇듯 세자의 효심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