흥례문 앞에서는 지금도 매 정시 정각이 되면 수문장들이 교대 의식을 한다. 140년 전 조선에서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의식이 매일 열렸다. 다만 그때는 2시간마다 한 번씩, 20~30명의 군인이 교대했고, 소지품 검사도 있었다.
흥례문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.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, 흥례문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다. 경복궁이라는 조선의 상징을 가로막기 위해서였다. 광복 후에도 총독부 건물은 그대로 정부청사와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. 1995년, 마침내 우리 정부는 그 건물을 허물고 흥례문을 복원했다. 이 문에는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.
흥례문은 1914년 완전히 철거되었고, 2001년 원래 자리로 돌아와 철저한 고증으로 다시 태어났다. 그 사이 70년 동안, 이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. 조선의 두 번째 정문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져야 했다.
지금 흥례문 앞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면, 동쪽 천장에는 청룡, 서쪽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다. 문은 다시 섰지만, 그 문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문 안에 남아 있다.
흥례문을 지나면 돌다리가 하나 나타난다. 영제교. 그 다리를 건너면 임금의 구역이다.
흥례문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.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, 흥례문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다. 경복궁이라는 조선의 상징을 가로막기 위해서였다. 광복 후에도 총독부 건물은 그대로 정부청사와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. 1995년, 마침내 우리 정부는 그 건물을 허물고 흥례문을 복원했다. 이 문에는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.
흥례문은 1914년 완전히 철거되었고, 2001년 원래 자리로 돌아와 철저한 고증으로 다시 태어났다. 그 사이 70년 동안, 이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. 조선의 두 번째 정문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져야 했다.
지금 흥례문 앞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면, 동쪽 천장에는 청룡, 서쪽에는 백호가 그려져 있다. 문은 다시 섰지만, 그 문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문 안에 남아 있다.
흥례문을 지나면 돌다리가 하나 나타난다. 영제교. 그 다리를 건너면 임금의 구역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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