근정문 앞 계단을 보라. 계단이 아니다. 밟고 올라가기 불편해 보이는, 비스듬한 돌 판이다. 비나 눈이 오는 날은 더 곤란했을 것이다.
임금님은 가마를 타고 이 답도 위를 지나가셨다. 답도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.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새. 조선의 왕들이 이 답도를 지날 때마다 마음속에 새겼을 문장 — '내가 다스리는 이 나라에는 봉황이 나타날 만큼 평화가 깃들었는가.'
근정전은 '부지런히 정사를 펼친다'는 뜻이다. 정도전이 지었다.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석희(1808~1873)가 현판을 썼다.
지금 근정문 앞에 서면, 답도 위 봉황 조각을 올려다보라. 계단이 아니기에 발이 걸리지 않는, 가마를 탄 임금만을 위한 길. 그 길 위에 새겨진 봉황은 여전히 태평성대를 기다리고 있다.
근정문을 지나면 마침내 근정전. 조선의 중심이다.
임금님은 가마를 타고 이 답도 위를 지나가셨다. 답도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.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새. 조선의 왕들이 이 답도를 지날 때마다 마음속에 새겼을 문장 — '내가 다스리는 이 나라에는 봉황이 나타날 만큼 평화가 깃들었는가.'
근정전은 '부지런히 정사를 펼친다'는 뜻이다. 정도전이 지었다.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석희(1808~1873)가 현판을 썼다.
지금 근정문 앞에 서면, 답도 위 봉황 조각을 올려다보라. 계단이 아니기에 발이 걸리지 않는, 가마를 탄 임금만을 위한 길. 그 길 위에 새겨진 봉황은 여전히 태평성대를 기다리고 있다.
근정문을 지나면 마침내 근정전. 조선의 중심이다.
오디오 가이드
근정문
불러오는 중...
0:00 / 0:00
아직 녹음이 없습니다
사진 갤러리

![월화문은 근정문의 서쪽에 난 작은 문입니다. 태조 4년(1395)에 처음 지었으며,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7년 경복궁 중건 후에 재건했습니다. 근정전에서 조회를 할 때 무신들은 월화문으로 출입했다고 합니다. ‘월화(月華)’란 ‘달의 정화’를 뜻합니다. ‘달[月]’은 음양의 이치에서 음(陰)의 성격을 띠므로, 서쪽 문의 이름으로 택한 것입니다.](https://www.heritage.go.kr/gung/gogung1/images/detail-in-e3.jpg)
![일화문은 근정문의 동쪽에 난 작은 문입니다. 태조 4년(1395)에 처음 지었으며,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7년 경복궁 중건 후에 재건했습니다. 월화문과 짝을 이루는 일화문으로는 문신들이 출입했다고 합니다. ‘일화(日華)’는 ‘해의 정화’를 뜻합니다. ‘해[日]’는 음양의 이치 상 양(陽)의 성격을 띠므로, 동쪽문의 이름으로 택한 것입니다.](https://www.heritage.go.kr/gung/gogung1/images/detail-in-e4.jpg)








